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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완전한 행복 * 자기행복에 취한 나르시시스트는 타인의 삶을 파괴한다.소식/우리글 2021. 6. 18. 12:41
◐ 정유정 작가 신작 완전한 행복
"자기 행복에 취한 나르시시스트는 타인의 삶을 파괴한다”
스릴러의 여왕 정유정 신작 `완전한 행복`
정유정(55)은 '악(惡)의 소설가'로 알려져 있습니다.
등단작 '내 인생의 스프링캠프'부터 시작해 그간 작품들 기저에 악에 대한 탐구가 있었습니다.
'악의 3부작'이라 불리는 '7년의 밤' '종의 기원' '28'은 그 정수입니다.
'종의 기원'은 '악은 어디에서 유래하는가'라는 질문을 던지고,
'28'은 인간이 다른 생물들을 학살할 권리가 있는지에 대해 고민하게 합니다.
'7년의 밤'은 천하의 살인마로 지탄받는 주인공 뒤 숨겨진 진실에 대해 보여줍니다.
왜 이런 작품을 쓰느냐고 물으면 정유정 작가는 이렇게 답하곤 합니다.
"최선의 길에도 불구하고 최악의 길로 가는 사람들 얘기를 쓰고 싶다."
2년 만에 나온 신작 장편 '완전한 행복'은 이전과는 조금 다르다고 합니다.
타고난 악인이 아니라, 자신의 욕망으로 말미암아 악을 저지르는 인물이 극을 이끌고 있습니다.
작가는 "인간의 욕망에 대해 관심을 가지게 됐다"며 "'악의 3부작'에 이은
'욕망 3부작'의 첫 번째 작품"이라고 말했습니다.
작품 속 주인공 신유나는 '완전한 행복'을 꿈꿉니다.
그의 행복은 '무결함'에 기초하는 것으로,
"행복한 순간을 하나씩 더해가면, 그 인생은 결국 행복한 거 아닌가"라는 남편 차은호에게
유나는 "행복은 뺄셈이야. 완전해질 때까지, 불행의 가능성을 없애가는 거"라고 반박합니다.
그는 완전한 행복을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습니다.
유나의 '노력' 속에 주변 사람들은 끊임없는 불행의 나락으로 떨어집니다.
이를 명징하게 보여주기 위해 작가는 피해자들 입장에 섭니다.
소설은 남편과 언니, 그리고 딸의 시선을 교차하며 얘기를 써 내려갑니다.
그간 작품들에서 시도하지 않았던 새로운 기법이고,
특히 사이코패스인 주인공의 시점에서 쓴 '종의 기원'과 극명한 대조를 이룹니다.
"내가 행복을 추구함으로 인해 주변 사람들이 불행해지고 삶이 파괴될 수도 있다는 걸 얘기하고 싶었다"며
"다른 소설에서 충분히 악인의 심리를 보여줬기 때문에 이번엔 다른 목소리를 들어봤다"라고 설명합니다.
정유정의 '행복론'은 유나와는 정반대입니다.
불행·결핍·불안이 없어야 행복이라는 유나와 달리 정유정에겐 필요악이라고 합니다.
그림자가 있어야 빛을 인식할 수 있듯이 이런 흠들도 모두 "인생의 요소"라고 그는 말합니다.
지금 그의 행복인 '스스로를 위해 자기 삶을 사는 것' 역시 남을 위해 살았던 젊은 날로부터 비롯된 것입니다.
'배려의 윤리' 또한 정유정 행복론의 핵심 요소입니다.
행복을 추구하는 것이 인간의 본능임을 인정하면서도 그는 늘 "우리에겐 행복할 권리와 타인의 행복에 대한 책임이
함께 있다"라고 덧붙입니다. 이런 맥락에서 정유정 작가는 '나르시시즘'을 경계합니다.
자기만이 특별한 존재라고 생각할 때 인간은 책임 의식 없이 행복을 추구할 위험이 높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그는 "남들과 비교해 우월한 '특별한 존재'는 없다"라며
"자신 같은 사람은 자신밖에 없는 '고유한 존재'가 바로 인간"이라고 설명했습니다.
작품은 코로나19 시기 쓰였습니다. 작년 3월 집필이 시작돼 올해 4월에 마무리됐습니다.
코로나19로 인한 고독은 글쓰기에 집중할 수 있는 시간을 가져다줌과 동시에 '집단 차원의 악'에 대해서도
고민하게 했습니다. 힘 있는 나라들이 백신을 쓸어가는 것, 조금이라도 해가 될 것 같으면
철저하게 국경을 봉쇄하는 장면 등은 극한 상황에서의 인류의 민낯을 적나라하게 보여줬습니다.
정 작가는
"'코로나'는 디스토피아였지만 의학의 발달로 유토피아가 와도 사람들 모습은 별반 다르지 않을 것 같다"며
"인간에게 유토피아가 왔을 때 어떤 문제들이 생겨날지 쓰고 싶게 됐다"라고 했습니다.
이처럼 현실의 일들은 꽤 자주 정유정 작가에게 창작의 영감을 줍니다.
전작 '7년의 밤'과 '종의 기원' 역시 실제 사건이 모티프입니다.
이번 작품은 아내가 전 남편을 잔혹하게 살해한 '고유정 사건'으로부터 시작됐습니다.
특히 최근의 사건이므로 '재현의 윤리' 문제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습니다.
정 작가는 "최대한의 고민 끝에 최소한의 요소들만을 가져오려고 노력한다"며
"실제 사건이 던지는 '문학적 질문'과 몇 가지 설정 외 모든 것들은 나의 창작물"이라고 설명했습니다.
[완전한 행복]은 버스도 다니지 않는 버려진 시골집에서 늪에 사는 오리들을 먹이기 위해
오리 먹이를 만드는 한 여자의 뒷모습에서 시작됩니다.
그녀와 딸, 그리고 그 집을 찾은 한 남자의 얼굴을 비춥니다.
얼굴을 맞대고 웃고 있지만 그들이 추구하는 서로 다른 행복은 서서히 불협화음을 만들어냅니다.
이 기묘한 불협화음은 늪에서 들려오는 괴기한 오리 소리와 공명하며 불안의 그림자를 드리웁니다.
그들은 각자 행복을 위해 노력합니다.
그러나 노력할수록 더 깊이 빠져드는 늪처럼, 그림자는 점점 더 깊은 어둠으로 가족을 이끕니다.
“행복은 덧셈이 아니야. 행복은 뺄셈이야.
완전해질 때까지 불행의 가능성을 없애가는 거.”
《완전한 행복》은 ‘인간은 행복을 추구한다’는 일견 당연해 보이는 명제에서 출발하면서도,
‘나’의 행복이 타인의 행복과 부딪치는 순간 발생하는 잡음에 주목합니다.
자기애의 늪에 빠진 나르시시스트가 자신의 행복을 위해 타인의 삶을 휘두르기 시작할 때 발현되는
일상의 악, 행복한 순간을 지속시키기 위해 그것에 방해가 되는 것들을 가차 없이 제거해나가는 방식의 노력이
어떤 결말을 향해 달려가는지를 보여주는 [완전한 행복]은 무해하고 무결한 행복에 경도되어 있는
사회에 묵직한 문학적 질문을 던집니다.
등장인물 세 명의 시점을 교차하며 치밀하게 교직 된 이야기는
첫 장을 읽는 순간부터 독자의 발길을 옭아맵니다.
쾌감이 느껴질 정도의 속도로 결말을 향해 질주하는 소설을 따라가다 보면
독자는 그녀가 만든 세계 위를 덮고 있는 서늘한 공포, 인간의 내면에 도사린 어두운 심연과 마주하게 됩니다.
그러나 정유정 작가의 소설은 단순히 두려움과 공포에 관한 소설이 아닙니다.
소설은 자신의 목표를 위해 노력한 인간을 조명하고 그것이 타인의 삶에 드리우는 그림자를 조명합니다.
노력의 그림자 안과 밖의 명도 차, 거기에 독자를 매료하는 서스펜스가 있습니다.
정교하게 구성된 상황과 장소, 인물들은 소설적 긴장을 강화하며 압도적 서사로 독자를 사로잡습니다.
소설 속 공간을 구체화하기 위해 작가는 전문가 인터뷰는 물론 시베리아 횡단 열차를 타고
러시아 바이칼 호수를 답사하는 등 꼼꼼한 취재를 병행했다고 합니다.
시베리아의 눈보라 속에서 더 날카로워진 작가의 문장은 올여름,인간의 심연, 그 깊고 어두운 늪의 바닥을
정조준하며 ‘행복의 책임’을 되묻습니다.
끝까지 휘몰아치는 이야기의 마지막 장에서 독자는 작가의 서늘한 목소리를 만나게 될 것입니다.
“우리는 타인의 행복에도 책임이 있다.”
"언제부턴가 사회와 시대로부터 읽히는 수상쩍은 징후가 있었다. 자기애와 자존감, 행복에 대한 강박증이 바로 그것이다. 자기애와 자존감은 삶에 중요한 의미를 가지는 미덕이다. 다만 온 세상이 ‘너는 특별한 존재’라 외치고 있다는 점에서 이상하기 그지없었다. 물론 개인은 ‘유일무이한 존재’라는 점에서 고유성을 존중받아야 한다. 그와 함께 누구도 ‘특별한 존재’가 아니라는 점 또한 인정해야 마땅하다. 자신을 특별한 존재라고 믿는 순간, 개인은 고유한 인간이 아닌 위험한 나르시시스트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 저자의 말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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